주현미 - 비 내리는 명동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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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 On Oct 8, 2024

노래 이야기

오랜 세월이 지나도 이렇게 찬 바람 부는 가을날이면 생각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배호’ 선배님인데요. 배호 선배님이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매혹의 저음가수’라고 불렀고, 주간지에서는 배호 선배님의 목소리를 ‘가을날 노란 은행잎’같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가을 바람처럼 쓸쓸하면서도 노란 은행잎처럼 부드럽고 포근한 음성을 가진 배호 선배님은 깊고 굵은 저음과 중역대의 미성 그리고 고음에서는 발성이 꺾이면서 개성 있는 목소리로 각광 받았고요. 그래서, 남보원이나 쓰리보이, 백남봉씨같은 코미디언은 배호 선배님의 노래를 모창했고, 배호 선배님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배호 모창가수 가요제’도 등장했을 뿐 아니라, 한동안 길거리에서 파는 카세트 테잎엔 ‘배호’선배님의 이름이 적혀있지만, 모창 가수들이 부른 노래들도 정말 많았습니다.

배호 선배님의 활동 기간은 6년에 불과하지만, 언젠가 ‘가요무대’에서 가장 사랑하는 우리나라 가수를 뽑는 여론조사를 했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가수 10인 안에 선정될 정도로 배호 선배님이 남긴 노래들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는데요.

배호 선배님은 처음에는 드럼 연주자로 시작해서 1964년 "배호와 그 악단"을 12인조 밴드로 구성하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요. 1965년 데뷔 앨범에서 ‘두메산골’을 노래했지만, 신장염이 발병하면서 데뷔 1년만에 모든 활동을 접고 쉬게 됩니다. 그러다 1966년 가을. 음악 활동을 중단하고 있던 배호 선배님은 어느 날 클럽에서 가수가 오지 않아서 대신 노래를 부르게 됐는데요. 그 모습을 본 신인 작곡가 ‘배상태’선생님이 배호 선배님을 알아보고 곡을 건넸는데, 그 노래가 바로 ‘돌아가는 삼각지’였고요. 1967년에 발표한 ‘돌아가는 삼각지’는 전국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신곡 발표 6개월만에 배호 선배님에게 각종 매스컴의 최고 가수상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발표한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이 연속 히트하면서 팬들은 배호 선배님이 과거에 불렀던 노래들까지 찾아듣게 되었고요. 요즘 표현에 의하면 역주행 신화를 쓰면서 배호 선배님의 예전 노래들까지 인기 차트를 휩쓸며 사랑 받게 되었죠.

하지만, 가수 생활 1년만에 얻었던 지병은 내내 배호 선배님을 괴롭혔습니다. 끝까지 무대에서 노래하다가 쓰러진 배호 선배님은 1971년, 스물아홉이라는 너무나 젊디 젊은 나이에 하늘의 별이 되고 말았는데요. 병세가 완연한 가운데에서도 배호 선배님의 노래는 멈추지 않았고, 1970년에 발표한 노래가
바로 ‘비 내리는 명동’입니다.

백영호 선생님이 작사, 작곡한 ‘비 내리는 명동’은 1970년 2월에 개봉한 영화 ‘비 나리는 명동 거리’의 주제가입니다. ‘비 나리는 명동 거리’는 변장호 감독님이 메가폰을 잡고, 장동휘, 김희라씨 같은 액션 배우들과 문희씨가 주연을 맡은 액션 멜로 영화인데요. 천애고아인 민석은 영아와 사랑했지만, 영아 부모님의 반대로 헤어지고 불량배가 되고요. 민석을 찾아 서울로 상경한 영아는 민석을 찾지 못한 채, 위험한 상황 속에서 자신을 구해준 철규와 결혼을 하게 되죠. 이후, 영화는 민석과 철규, 영아의 가슴 아픈 삼각관계를 그리면서 위험한 격투 끝에 철규는 목숨을 잃게 되고, 마지막 순간에 민석에게 영아를 부탁하며 숨을 거두는데요. 액션과 멜로가 어우러진 이 영화는 개봉관에서 2만5천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영화 ‘비 나리는 명동 거리’에서 여자 주인공인 ‘영아’의 마음을 노래한 곡이 이미자 선배님의 ‘영아의 노래’이고, 남자 주인공인 민석의 심정을 노래한 곡이 배호 선배님의 ‘비 내리는 명동’입니다.


“비 내리는 명동 거리 잊을 수 없는 그 사람
사나이 두 뺨을 흠뻑 적시고 말없이 떠난 사람아
나는 너를 사랑했다 이 순간까지
나는 너를 믿었다 잊지 못하고
사나이 가슴 속에 비만 내린다

​ 비 내리는 명동 거리 사랑에 취해 울던 밤
뜨거운 두 뺨을 흠뻑 적시고 울면서 떠난 사람아
나는 너를 떠났어도 이 순간까지
나는 너를 사랑해 잊을 수 없다
외로운 가슴 속에 비만 내린다 ”


이 노래는 발표된 지 5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사랑 받는 명곡인데요. 배호 선배님의 음색과 노래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잘 어울리면서 수많은 가수들이 이 노래를 리메이크해서 불렀고요. 지금도 가요무대를 비롯한 여러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서 변함없이 사랑 받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명동’은 큰 감흥이 없겠지만, 세월의 더깨가 쌓인 중장년층에게 ‘명동’은 진한 정서가 담겨있는 곳이죠. 50년대, 60년대에 김수영과 박인환, 전혜린씨같은 작가들과 지식인들, 음악하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연극하는 사람,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모두 명동의 다방과 선술집을 드나들었고요. 1970년대의 청춘들은 명동의 음악다방과 맥주집에서 새로운 청춘문화를 꽃 피웠습니다. 그뿐 아니라,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 역시 명동 이었는데요. 이 가을, 나직하게 ‘비 내리는 명동’을 부르다보면, 언젠가 궂은 비 내리는 명동의 밤거리를 술 취해 쓸쓸히 걸어갔던 진한 추억, 그리고 우리 청춘의 그리운 신파가 노래와 함께 오버랩될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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